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(문단 편집) == 체르노빌 전투(Battle of Chernobyl)[* 이 사고를 다룬 디스커버리 채널의 동명의 다큐멘터리 제목이기도 하다.] == [[독재]] 체제에서만 가능한 무제한적인 인력 동원과 ~~인권을 무시한~~ 조치들이 이런 비상 상황에는 효력을 발휘했다. 소련 휘하의 '''[[총동원령|모든 공화국에서 인구 비례로 인원을 할당하여]] 소련 전체에서 총 60만 명의 인력(주로 예비군)을 징집했다.''' 소련 정부는 엄청난 인원을 조금씩 피폭시키는 방식으로 체르노빌 노동인력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려고 했다. 0.5 Sv 이하의 방사선에 사람이 피폭되면 즉각적인 증상은 거의 없으면서 약간의 [[백혈병]] 위험만 생기는 정도로 약하게 피해를 입기 때문에[* 사실 이도 제대로 된 연구에 의함이 아니라 소수 사례를 바탕으로 한 적당한 추정이며 수백 mSv 정도의 피폭에서의 중장기 피해에 관한 정확한 연구결과는 없다. 사례가 많지도 않고 [[생체실험|직접적으로 실험해 보는 것도 문제라]] 연구가 되기 어려운 것도 있다. 지금도 그럴 판국에 당시라면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.] 이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었다. 체르노빌 청산 작업 전체를 연구한 전문가의 의견에 의하면 "현명한 조치였으며 약간의 백혈병 위험은 있지만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은 수준"이라고 한다. 총 지휘는 니콜라이 드미트리예비치 타라카노프(Николай Дмитриевич Тараканов, Nikolai Dmitrievich Tarakanov) 소장이 맡았다. ||<#ffffff> [[파일:external/img.hani.co.kr/117989784863_20070524.jpg|width=100%]] || || 1986년, 체르노빌이 폭발 사고로 황폐화된 지 8일이 지난 뒤 노동자들이 핵발전소의 파괴된 원자로에서 자신들을 밖으로 실어 나를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. ---- ''-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-'' ||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